아름다운 동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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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될거니?
곰이 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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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이다. 호랑이와 곰이 함께 동굴에 들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중간에 포기한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끝까지 인내한 곰은 사람이 되었다는 바로 그 이야기 말이다. 여기, 중간에 포기한 호랑이가 아닌, 인내하여 사람이 된 곰이 되는 길을 선택한 청소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어린 곰의 힘들었던 성장 이야기

희서(가명)는 2021년 겨울, 마약 투여 혐의가 인정되어 법원에서 장기보호관찰과 시설감호위탁처분을 받아 00소재 6호시설에 입소하였다. 00에는 전혀 연고가 없어서 이 처분을 계기로 처음 00 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희서는 6호 처분을 받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입소 초기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과는 반대로 시설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하였고 실제 생활태도 역시 좋다는 평이었다.
시설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였던 희서는 직원들의 지도에 잘 따를 뿐 아니라 다른 동생들을 보살피는 등 의젓한 모습을 보여 눈에 띄는 아이였다.
저런 아이가 도대체 왜 마약에 손을 대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희서는 해군 부사관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으나 평범하고 순탄한 유년기를 보내지는 못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여 편부 슬하에 성장하였는데 아버지는 엄한 성향으로 훈육방식 역시 폭력적이었다고 한다. 희서는 반발심에 가출을 하고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였고 아버지는 이에 대해 폭력으로 대응하여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결국 희서가 아동학대로 아버지를 신고하면서 보호자와 분리되어 여동생과 함께 보시설에 입소하였다. 그 다음부터 잘 지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희서는 '놀던 습관이 있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행성향이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면허운전을 하고 펜타닐 패치에 불을 붙여서 연기를 흡입하기까지 한 것이다.
17살 소녀의 인생 스토리였다.
동굴(?)속과 같은 센터에서 인내한 곰의 이야기
희서는 마약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고 언제든 본인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된 단약교육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마약퇴치본부 00지부와 연계하여 8회기의 마약중독치료 상담을 실시하였는데 다행히도 희서는 이에 순응적이었고 상담의 효과도 좋았다. 그러나 6호 퇴소 이후에도 단약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도 중요하겠다는 판단을 하였다. 희서의 퇴소 날짜가 임박한 상황이어서 더욱 염려되었다.


"희서야, 6호 만기 퇴소일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 어디서 지내고 싶니?"
"아버지랑은 같이 지낼 수가 없어요. 제가 갈 곳이 있겠어요?"
아이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였다. 퇴소 후 성인이 될 때까지는 또다시 보육시설이나 쉼터를 전전하며 생활할 것인데 적응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희서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던 6호 시설 담당자와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법원으로부터 6호 기간 연장 결정을 받았다. 아이는 오히려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여 더 마음이 아팠다.

당장 갈 곳을 찾을 필요는 없지만, 6개월 후면 진짜 6호 시설을 떠나야 하니 대책을 마련하여야 했다. 이 무렵 희서는 고등학교 3학년 졸업반이었던 터라 진로에 대한 고민도 하여야 했다. 희서는 입소 초기부터 대학교 진학을 희망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학교로 진학하여 무슨 공부를 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였다.
"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는 가고 싶지 않아요. 00가 낯설겠지만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00구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요."
희서의 희망에 따라 00에 있는 모 대학 부사관학과에 지원하였고 결과는 합격! 이제 새롭게 시작하여야 한다.


곰, 대학생이 되다!

희서는 6호 시설 퇴소 후 대학교 기숙사에 입소하였다. 설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또 다른 과제를 이행하여야 했다. 희서가 법원으로부터 야간외출제한명령을 특별준수사항으로 부과받았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이를 이행할 수 있는지 출장을 통해 확인하였다. 2인 1실을 사용하는 기숙사 특성상 유선전화를 통한 야간외출제한명령 감독시 보호관찰 사실이 공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희서는 오히려 담담했다. 학교 행정실에 자신이 보호관찰 중인 사실을 스스로 공개하며 야간외출제한명령 감독을 위해 유선전화를 설치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준수사항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보인 것이다.
우리는 희서를 믿어보기로 결정하였다. 야간외출제한명령 대신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할 것, 기숙사 생활 규칙을 잘 지킬 것'이라는 특별준수사항을 새로이 부과하도록 법원에 요청하였고 법원은 이를 인용하였다. 한고비를 넘긴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이었다. 국가장학금을 받아 학비에 대한 부담은 없었으나 생활비가 문제였다. 다행히 자립지원금과 마약퇴치본부로부터 6개월간 단약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으나 여전히 생활비는 부족했다. 희서는 방학기간 중 물놀이 시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부족한 돈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마련한 돈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희서는 제대로 경제교육을 받아보지 못한터라 돈이 생기면 네일샵에 가서 미용을 받거나 예쁜 옷을 구입하는 등 필요 없는 곳에 과소비를 하고 대학생 기분을 내느라 학교 수업에도 빠지기 시작하였다.

"희서야, 정신 차려야 해, 참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가 되고 말거니? 아니면 곰처럼 참아내서 사람이 될거니?"
꾸중을 섞어가며 얼마나 이야기를 한 것일까? 이후 희서는 마약퇴치본부 담당자에게 지원금 관리를 부탁하는 등 달라지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사람이 된 곰

보호관찰 기간 중 희서가 받은 8차례의 마약시약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고, 모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단약 성공 사례자로서 인터뷰 요청을 받기도 하였다.
관계가 소원하였던 어머니, 동생들과도 다시 연락을 하며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직 차마 용서하지 못한 아버지이지만 그 뒤를 따라 직업군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희서는 어려운 시기를 참아내고 미래를 꿈꾸는 진정한 사람이 되었다. 희서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꽃길만을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히 또 다른 유혹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으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성숙한 인간으로서 살아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