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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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하나쯤은
잘하는 것이 있다.

소년원 생활에 부적응하여 어려움을 겪던 소년이
검정고시 합격 후 수능시험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지도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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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연말 한 소년이 D소년원에 입원했다. 소년은 키 176cm에 몸무게 50kg으로 앙상하게 마른 몸을 하고 모두의 눈치를 쉼 없이 살피는 초식동물을 연상케 하는 외모의 학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화를 해보니 소년원 경험이 전혀 없어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고 말을 심하게 더듬어 개인 면담임에도 목소리가 너무 작아 대화 내용을 수차례 물어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반에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응하기 힘들 것 같은데...’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소년은 마침 우리 반에 배정되었고 예상처럼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소년원 생활을 처음 해보는 것을 알게 된 동료들은 소년에게 장난을 빙자한 괴롭힘을 시작하였고 소년은 입원 초기 환청, 이명에 시달리게 되었다.
소년은 가해학생들을 피해 심신안정을 할 수 있는 개별실로 격리되었다가 호실로 복귀하는 상황이 반복되어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소년원 생활을 가까스로 이어가던 중 4월에 치르게 될 검정고시 시험을 위해 2월 말경 검정고시반을 편제하게 되면서 소년에게 응시여부, 자격 등을 확인하기 위해 면담을 했다. 소년은 고등학교 자퇴 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4월 모의고사를 치를 수 없었지만 다음에 있을 8월 모의고사 시험에 응시하길 희망했고 면담 중 의외의 발언을 했다.

“선생님, 사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 공부는 꽤 잘하는 편이에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전교에서 2등을 한 적도 있어요.”
평소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만 토로하던 학생이 공부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처음으로 의욕이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생소하고 신기해서 퇴원 후에 삶에 대해 물었더니 의대에 진학해서 훌륭한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이 아이가 소년원 생활에 잘 적응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직업훈련보다는 공부를 시켜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8월 검정고시 시험을 치르기 위해 6월부터 편성된 검정고시반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교사들의 지도로 검정고시 모의고사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검정고시를 치르게 될 동료들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춰 공부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검정고시반이 운영되면서 동료들과의 관계도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어려움을 토로하던 소년의 얼굴에 웃음이 보이기 시작했고 동료, 교사들에게도 신뢰가 쌓여갔다. 8월, 소년은 검정고시를 치렀고 평균 98.3점으로 전 과목에서 총 세 문제를 틀려 상위 5% 이내 성적을 냈다.

이처럼 좋은 결과를 냈기 때문이 아니라 소년은 제과제빵이나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좋은 지도라고 생각했다.
검정고시를 치른 후부터 소년은 직업훈련을 받지 않고 호실과 개별 교육장에서 수능공부를 시작했다. 부모님께 필요한 책이나 문제집을 요청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다.
야간에는 소년이 원하는 시간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당직 근무자들이 지도했고 모의고사는 실전처럼 시간을 재서 치를 수 있도록 지도했다.
시설 내 처우라는 특성상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으나 교사들을 통해, 교사가 잘 모르면 찾아서라도 알려주며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던 중 소년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과 구토, 설사 등이 지속되어 의무과 진료를 받게 되었다.
의무과에서는 내과적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였으나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있어 대학병원에서 CT촬영, 내시경 검사, 조직 검사를 했다.
다행히도 내과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같은 증상이 지속됐다.
그래서 소년의 건강상 문제가 심리적인 요인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고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면서 스트레스로 인해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사실 소년은 검정고시반에 편제되어 교사나 동료들의 기대,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되면서 본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부담감을 느끼게 됐다.
소년원에서 늘 괴롭힘을 받고 기죽어 살던 소년은 갑작스레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 되면서 기대와 다른 결과를 냈을 때 받을 시선이 두려웠다.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소년의 멘탈 관리를 위해 정신과 진료, 전문상담사와의 상담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했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통해 교사와 운동장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처우심사를 통해 수능준비 생활실에서 학습하고 개별실에서 공부하도록 지도했다.
상담을 통해 소년의 부담감을 덜어주고자 노력했고 모두의 바람대로 건강을 회복했다.
구토나 설사로 인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 감소했던 체중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모의고사에서 점수가 예상만큼 나오지 않아도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사실 소년은 장기간 수능 공부를 하지 못해 희망했던 의대에 진학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소년이 수능 공부를 시작하고 초반에는 모의고사 점수가 엉망으로 나와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본인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월말 5번째 모의고사를 풀게 되면서 대부분 과목에 1~2등급 점수를 받게 되었다.
모의고사에서 정말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공부 기간이 짧아 소년은 희망하는 의대에 진학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소년은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시험 전날 가정학습 허가를 받고 집으로 갔다.
수능 당일 부모의 배웅을 받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능을 치렀다. 소년은 최선을 다했고 가채점 결과 국어 1등급, 영어 1등급, 수학 4등급, 한국사 1등급, 화학Ⅰ 2등급, 생명과학Ⅱ 2등급의 성적을 받아왔다.

소년이 희망하는 의과대학에 진학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점수이지만 약 3~4개월 정도 공부를 한 점, 소년원에서 생활하며 타 수능생들과는 다르게 생활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상당히 유의미한 점수임에 틀림없다.
소년은 모범 학생으로 선정되어 표창장과 포상을 받았고, 임시퇴원을 허가받아 11개월 18일 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 후, 소년은 C대학교 사범대학에 지원하여 학교를 다니면서 본인의 목표인 의과대학에 진학하고자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할 계획이다.

소년은 한 번의 실수로 10호 처분을 받아 처음 겪어보는 어려움에 많이 힘들어했지만, 본인이 잘하는 것을 계속함으로써 자신감을 얻고 사이가 좋지 않던 동료들과 관계를 회복하는 등 여러 어려운 과정들을 극복해낸 것은 소년의 삶 중 큰 경험이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년이 퇴원 후에도 목표를 위해 꾸준히 달려나가 본인의 꿈을 이루게 되길 기대해본다.